일상

머리 깎아달라는 아내의 황당한 부탁

도랑가재 2014. 2. 12. 13:39

"결혼해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으로 제목을 정하고 이글을 작성해 봅니다. 

올해로 제가 결혼 한지 5년차에 접어들었어요. 그 기간이면 서로의 장단점을 모두 파악할 수 있는 시간으론 충분했다고 봅니다. 그리고 나서는 실망할 새도 없이 자식을 키우느라 발버둥 치는 시기인데, 이젠 마눌님 눈동자만 마주쳐도 무슨 이야기를 꺼낼 것인지 무슨 이야기를 하려다가 말았는지 말 안 해도 알게 되더라는...

그렇게 살고 있는 저희 집 지붕 아래 오늘 갑자기 아내의 이상한 주문이 시작되었습니다.

"여보, 미장원 가야 하는데 둘째 때문에 시간이 나지 않으니 당신이 좀 깎아주면 안 될까?"

헐...

제가 이 지구 상에 모습을 보인 이후 금강산이 네 번 바뀌는 동안 이 별일 저 별일로 다 살아봤지만, 제 머리도 한 번 깎아본 적 없는 저더러 머리카락을 잘라 달라니요..

"이야, 마누라가 제정신이야?"

"워메, 마누라가 평생 바가지만 긁을 줄 알았는데, 알게 모르게 남편을 신임하고 있었던 거야?"

잠깐 동안의 잡생각이었지만 참 행복했던 순간이었습니다.

지금부턴 말 보다 사진으로 아내의 머리카락을 맘껏 주무르고, 싹뚝싹뚝 잘랐던 행복한 순간을 사진으로 보여드리면서 행복했던 순간을 터치해 보겠습니다.



애초에 "난 자신 없어!" 그랬어야 했는데, 마눌님께서 예고도 없이 묻는 바람에 저도 아무 생각 없이 내 뱉은 말, "내가 머리 잘 깎는 건 어떻게 알았어?" 했던 것이 부담 백 배가 되었어요. 아내가 뒤돌아서서 머리를 맡겼을 땐 큰소리 쳤던 제 말과는 달리 손이 떨려서 빗이고 가위고 덜덜 떨려서 마누라가 눈치챌까 오금이 저리기까지 했다는..ㅠ



어쨌거나 마눌님의 머리카락은 제 손바닥에 맡겨 졌고 전 가위를 들어야 하는 상황에 닥쳤어요. 막상 제가 직접 머리를 가위로 잘라보니 뜻대로 안 되고 있었지요.ㅠㅠ 

좌우 대칭만 맞지 않은 게 아니라...




바깥 머리 안 머리가 조화를 이루지 못해 정말 난감했다는...ㄷ




"아직 멀었어?"
아내의 질문에 겁이 나서,,

"으응!~~"
"이제 다 되었어!, 잠만,,,정리 좀 해 줄께..ㄷㄷ"




머리카락은 가위로 잘라도 통증이 없겠지?
어차피 아내는 제가 다 되었다고 할 동안 뒷모습을 볼 수 없으니 주구장창 자르게 되더라는...ㅠ




어쨌건 하룻밤을 넘길 순 없는 상황이라 겨우 마무리해 놓고...



"응,,,이제 다 되었네.."
"봐라, 내가 깎으니 넘 예쁘게 깎자나.."ㄷㄷ


마눌님 거울 보고 나오더니 맘에 들었는지 이번엔 "앞머리도 눈을 찌르니 눈썹까지 잘라!" 그러더군요.ㅠ

헐,,,
(일단 뒷 머리가 맘에 들었다니 부담은 50프로 사라졌어요)




또 눈썹까지 자르긴 잘랐는데,,,
가위 끝이 마눌님 눈을 찡그려서 생겨난 주름보다 수백 배 더 크게 떨렸었다는...

그래도 눈감고 있네요.

떨리는 가위 끝이 마눌님이 눈치 못 채기를 바라며 또 살 떨리는 모험을 해야만 했어요.



오늘 제가 저 보자기로 아내의 목을 휘감고 저 가위로 아내의 머리카락을 잘랐는데, 가위질 한 번도 안 해본 제가 무작정 덤벼들었다가 낭패를 볼 뻔한 사건이었지만, 그래도 남편이랍시고 믿어 준 아내가 너무 고맙고 그래서 남편인 저도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