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 살 된 제 딸 은수는 미술에 소질이 있는 아이가 아니라서 세 살 무렵엔 점을, 네 살 무렵엔 선을, 다섯 살 무렵엔 원을 스케치북에 그렸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어요. 원을 그리기 시작했던 지난해부터 겨우 그림의 다양성이 표현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로부터 1년 후인 지금에 와서 딸의 스케치북은 함부로 버릴 수 없는 화첩이 된 것 같아요. 그렇다고 우리 딸이 갑자기 일취월장을 했다는 이야기는 아니고, 적어도 아빠한테 만큼은 개그 콘서트보다 재미있는 이야기 거리가 있고 웃음도 많이 건네주는 평생 보관해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만든 스케치북입니다.

스케치북

세 살 무렵부터 사주었던 스케치북이지만,다섯 살이 되어야 비로소 눈,코,입이 하나 둘씩 보이기 시작했어요. 하지만, 이때도 동그라미 안에 눈이라도 있으면 대견스러울 뿐 스케치북을 굳이 보관해야겠단 생각이 들지 않았답니다.

더 이상 그릴 곳이 없으면 버리고 다시 사주는 정도였지요. 그러다가 오늘 문득 여섯 살이 되어 그린 그림을 보고는 생각이 확 바뀌게 되었습니다.

딸의그림

구름도 그릴 줄 알고 집도 그릴 줄 알고, 엄마아빠의 머리도 멋스럽게 표현해 놓았어요.
오른쪽엔 아빠보다 더 잘 그린 듯한 꽃나무까지 있었습니다.


불과 한두 달 전에 보았던 그림이랑 완전 딴판이 되어있었기 때문에 화들짝 놀라기도 했지만, 이렇게 빨리 진화하는 그림이라면 "지금부터라도 소중하게 보관해야지!"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큰얼굴

이 그림을 보고 얼마나 웃었는지 몰라요. 세상에서 가장 큰 얼굴이지 싶은 생각이 들었거든요. 또 이 그림을 보고 막 움찔하기도 했었다는.. 왜냐하면 그림을 그린 주인공의 아빠 얼굴이 작지는 않기 때문이죠.

한참을 웃다가 울다가 아빠가 아니길 바라는 마음에서 조마조마하게 관찰해봤어요. 그랬더니 천만 다행으로 그림 속의 얼굴 큰 사람은 남자가 아니라 여자란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먼저 하체를 보았어요. 아빠 눈엔 틀림없이 치마로 보였습니다.

"앗싸, 남자가 아니고 여자다."

이건 잘못하면 아빠 가슴에 평생 씻을 수 없는 상처로 남을 뻔 했습니다. 여섯 살 딸의 눈에도 아빠 얼굴이 커 보였다는 뜻이 될 수 있었기 때문이죠.

정말 여자가 맞을까 다른 곳도 둘러보았는데, 머리마저 머리끈으로 묶었거나 리본이 걸려있었어요. 이 정도면 거의 확실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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