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 맛을 내는데 두 번째 가라고 하면 삐칠 녀석 중에 하나가 바로 고춧가루인데요, 그 고춧가루를 생산해내기 위한 농사가 막 시작되었습니다.

촉을 틔우는 시기까지 더하면 근 백일 가까이를 온상 하우스에서 육묘로 자라야 하기 때문에, 초기부터 농부의 보살핌을 많이 필요로 하는 것 중에 하나가 바로 고추 농사입니다.

고추모종

아주 어렸을 때는 갓난아기처럼 따끈따끈하게 전열을 넣어 보온을 철저히 해주어야 하고, 사람으로 쳐서 유년기에 접어들었다 싶을 때는 지겹든 말든 두꺼운 담요를 매일 일정한 시간에 덮어주고 걷어내 주어야 합니다. 또 목 마르면 물을 마셔야 하듯 고추모종 역시 이틀이 멀다하고 물을 흠뻑 뿌려주어야 했답니다.

그렇게 가꾸고 보살핀 고추모종을 때가 되어 마침내 밭에 정식을 했습니다. 한편으론 따로 물 줄 일이 없어져서 속 시원했지만, 행여 서리가 내릴까, 행여 고라니가 들어와서 나물처럼 뜯어먹지나 않을까 걱정할 일이 생겼습니다.


그것 말고도 사람도 평생을 감기와 싸우며 살아가지만, 이 녀석들도 밭에 심기는 순간부터 농사가 끝날 때까지 탄저균에 노출된답니다. 고추농사에 있어서 탄저병만큼 치명적인 것도 없기에 어깨는 결코 가벼워지지 않더군요.

분무기

600평이 넘는 밭이 사진에 보이는 밭 말고 또 두 군데나 더 있어요. 그래도 이 밭은 참 고맙게도 물을 담아올 일을 덜어주는데 위치해 있었답니다.


고추밭

고추모종을 밭에 심기도 전에 벌써 고라니들이 다녀갔지만 어찌하겠어요. 밭을 돌아가며 말뚝을 박고 고추줄이나 망 같은 것으로 둘러 치고 지켜보는 수밖에요. 그러고 나면 이 농부는 또 참깨밭과 콩밭, 고구마밭과 논으로 쫓아다녀야 하니 더 이상의 보살핌은 당분간 없을 것 같아요.

장장 백일 간의 정성을 들여 겨우 밭에 심긴 했지만, 애지중지 보살폈던 어린 고추모종들을 이제는 제 스스로 크기만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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