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맘때가 되면 곶감을 만들기 위해 감을 따는 풍경이 그려집니다. 저흰 시골에 살고 있지만 여태 감나무가 없습니다. 더 정확히는 이제야 생겼어요. 얼마 전에 장에 나갔다가 묘목을 파는 곳을 지나다가 꼭 심고 싶었던 감나무와 대나무를 각각 한 그루씩 사다가 심었거든요. 과실수는 평생 심을 날 없을 줄 알았는데, 아빠가 되니까 그쪽으로 눈이 가게 되더군요.

감

총각 땐 분재와 관상수에만 빠져 살다가 부모가 되어서는 과실수만 눈에 보이기 시작하는 것이 아무리 생각해봐도 웃기거니와, 감나무 없이 지내보았더니 이웃 분들의 열화와 같은 인심 덕을 보게 되었습니다.

며칠 전 영하 4도의 기온 속에 대부분의 감나무는 물러져서 곶감용으로 사용하기 힘들게 되었고 그나마 단단함을 간직하고 있는 한 이웃집의 감나무를 선택할 수 있었어요.

곶감


귀하디 귀한 감을 그만 떨어뜨리고 말았어요. 단단한 감도 시멘트 바닥에 떨어지면 요렇게 됩니다.

감이 떨어지는 위치에 그물을 설치하거나 장대에 감을 담을 수 있는 주머니를 만들어주면 좋아요.

감


생기기도 잘 생겼고 매끈하며 빛깔도 참 고왔습니다. 마당 한켠에 우뚝 솟아 볼거리 먹을거리 풍성하게 만들어주는 감나무를 어찌 심지 않을 수 있겠어요?

하지만,그게 참 이상합니다. 자식이 있으니 그제야 보면 볼수록 예뻐지는 것이 과실수라나요..

옛날 한번은 아버지 살아 생전에 감나무를 뒷뜰에 심으실 때였어요. 어머니께서 "다 늙어서 뭔 나무를 사다 심는교?" 아마도 과실수는 당년에 열리지 않고 수년에 걸쳐 서서히 열리는 걸 비꼬아서 말씀하신 것 같아요.

그러자 아버지께서는...
"내가 못 먹으면 자식들이 먹겠제!"
아주 단순하면서도 투박한 말씀이었지만, 그 안에 자식 사랑이 얼마만큼 배여있었는지는 이제 와서 깨닫게 됩니다.
 

감


아내와 둘이서 연락을 받고 들뜬 마음으로 달려갔어요. 
이번엔 제발 단단한 녀석들만 주렁주렁 매달려 있기를 빌면서..


와!~
홍시도 별로 보이지 않고 멀찌감치 쳐다봐도 곶감용으로 딱 제격인 녀석들이 자태를 뽐내고 있었습니다. 

감


그런데, 몇 개 따지도 않았는데 저희가 준비해온 장대가 이 감나무 앞에서는 턱없이 짧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마침 사다리가 있어서 그 위에 올라가서 감을 따는데도 맨 아랫가지의 감만 겨우 딸 수 있었다는..


감나무


이번엔 조금 언덕 진 곳에 돌담이 있어 그 위에서 따봤어요. 아내나 저나 몇 개 따고 나면 팔이 아파,서로 번갈아 따는 횟수만 늘어나고 수확 양은 그 자리에서 맴돌았습니다.

답답했던 아내가 "나무 위에 올라가면 안돼?"
은근히 그러기를 바라고 있는 눈치였어요.

이거 어쩌지요?
홍시가 먹고 싶어 감나무에 올랐다가 떨어진 기억으로 인해 추호도 감나무에는 올라가고 싶지 않은 제 심정을...

제가 어린 시절을 보냈던 80년대 초반엔 이 산골에 먹을 게 참 없었습니다. 어쩌다가 홍시라도 눈에 띄면 죽기살기로 나무에 올랐는데, 하루는 비에 젖어있는 감나무에 올랐다가 세상이 하얗게 보일 정도로 큰 충격을 받으며 떨어졌던 아픈 기억이 있습니다. 그것도 나를 떨어뜨린 똑같은 품종의 감나무와 다시 대치하고 있는 상황에서 참 곤혹스러운 입장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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