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1년 농사를 마무리해야 하는 단계에 왔기 때문에 추수가 끝난 밭을 하나둘 설거지 하느라 여념이 없습니다. 오늘도 역시 고추밭에 왔어요.

고추밭


아침밥을 먹고는 곧장 고추밭으로 달려와서 지줏대를 뽑고는 있지만, 혼자 하는 일은 능률이 제대로 오르지 않습니다.

우앙, 심심하다!
흐미, 지루한 것!

어느새 지줏대를 뽑는 둥 마는 둥 시계바늘에 몸을 던져 놓고는 산을 넘어오는 구름의 생김새만 요리조리 뜯어보는 재미로 일을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합니다. 친한 친구 만나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고,,
구름마다 닮은 동물 이름 붙여가며 놀았더니 시간은 지척인데 지줏대는 아직도 요 모양으로 남아있었습니다.


밭


마눌님 참 들고 오기 전에 부지런좀 떨어봐야겠어요!
10시에 어린이집 버스가 와서 둘째를 데려가면 곧장 달려오겠지요.

아직은 올 시간이 아닌데도 자꾸만 눈이 갑니다.

"쭌이 데려다 주고 참 들고 갈게!"

벌써 두 시간이 지났는데도 그 소리가 아직도 귓전에 맴돌고 있어요. 집에서는 토닥토닥 싸우는 게 일인데, 오늘은 웬일인지 유독 기다려지네요. 비록 밭둑에 저보다 키가 큰 잡나무가 시야를 가리긴 했어도 아내가 오는 걸 훤히 바라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고추밭


아내가 밭에 당도하자마자 참 먹으라는 소리를 하기도 전에 제가 먼저 후다닥 쫓아갔어요. 

가방을 열어보고 "물은?"
그러자 "아,맞다!" 
깜빡하고 가져오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들(밭)에 오는데 물도 안 챙겨 갖고 오냐?"
그동안 콧노래를 불러가며 아내를 기다렸다가 지금은 갈증에 부글부글 끓는 소리가 나왔어요. 사과즙이랑 단감만 달랑 들고 온 아내한테 갈증을 느꼈던 만큼 톡 쏘고는 저는 저대로 아내는 아내대로 각자 할 일을 시작했습니다.


들깨


집엔 좀 일찍 도착했어요.

한번 갈증이 느껴지기 시작하니 점점 심해졌거든요.

검정들깨


그래도 둘째를 등원 준비시키면서도 들깨까지 말리려고 마당에 펴놓고 밭에 왔었네요.

검정들깨

어제 선풍기로 먼지를 깔끔하게 날려 보낸 검정 들깨입니다. 역시 제 손으로 거둔 것은 자식만큼 예뻐 보이나 봐요. 깨알처럼 우리의 오늘도 단단한 알갱이가 되어 기억 속에 섞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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