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짓날을 하루 앞두고 아내와 설전이 벌어졌어요. 먼저 팥죽을 만들지 않았기 때문에 시루떡이라도 사 먹자고 해서 시장을 보러 나갔다가 생긴 일이에요. 떡이랑 생선을 사서 어디로 갈 테니 어디 앞에 있으라고 하더군요. 그때 제가 했던 말! 

"나물은 안 사?"
그러자 아내 왈.."나물은 왜?"
"허,,참~"
"동지에 여러 가지 나물로 비벼 먹어야지!"


팥죽

<다행히 옆집 할머니로부터 따뜻한 팥죽 한 그릇이 배달되어 왔어요.>

그렇게 아내와 전 동짓날에 뭘 먹어야 하는 지에 관한 주제로 티격태격 설전이 벌어지기 시작했어요. 싸움이나 논쟁이라는 형체를 가만히 뜯어보면 시간을 끌면 끌수록 묘하게 목소리가 커지고, 이것저것 정체가 불분명한 것들까지 막 갖다 붙이게 되더라고요. 더군다나 전 한국에서 수십 년을 살아온 오리지널 토종이고 아내는 한국 생활이 6년 차인 베트남 아내였으니, 제가 우겨서 진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나물이 먹기 싫다는 건지 안 먹겠단 건지 생선만 사겠다는 아내한테 "우와, 그럼 당신은 동짓날에 팥죽만 먹어?" 이렇게 되물었어요. 그러자 아내는 "그럼 뭘 먹는데?"

젠장, 거기에서 고집을 피우지 말았어야 했는데 미친 오기가 발동했는지 지금에 와서 생각해도 이해가 가지 않는 말을 하고 말았어요. 

"당신은 그럼 동짓날에 팥죽만 먹을 거야?" 
"여러 가지 나물 무친 거랑 오곡밥도 먹어야지!"

컥.. 제가 왜 그런 말을 했을까요? 
이맘때 나물 무친 거 생각하다 보니깐 오곡밥이 끼여 들었어요. 그러자, 아내 왈, "그건 1월 15일에 먹는 거자나!" 

"1월 15일?" 문득 스치고 지나가는 것이 있었으니,, 음력으로 새해 첫 보름달!

동그랗고 크고 밝은 보름달을 머릿속에 그려보니까 그때야 날짜 잃고 뒤죽박죽이 된 녀석들이 제자리로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흐음,, 그렇군!" 토종이 한국 생활 6년 차 베트남 아내한테 지고 말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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