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날 장판과 도배를 새로 하면서 밖으로 쫓겨나야 했던 책장이 비와 눈을 간신히 피할 수 있는 베란다에서 다시 세월의 때를 묻히고 있었습니다. 그 안에는 그동안 읽었던 책들과 오래된 앨범이 있었는데, 관리 소홀로 인해 다시는 되찾을 수 없게 된 것이 있었어요.

책장


책은 간간히 책장 밖으로 나와 돌아다니는 것을 봐왔지만, 앨범이 이렇게 뜯겨져 많은 사진들을 되찾을 수 없게 되리라곤 전혀 예상하지 못했어요. 그나마 최근에 강풍이 불어 책장 문이 열려있었던 탓에 이런 사실을 알게 되었지요.
 

책장


상태가 말이 아니지요?

필름과 앨범이 필요 없는 디지털 카메라 시대에 너무 익숙해져 있어서 그랬는지 아날로그 풍의 옛 앨범을 저도 모르게 등한시 여겼던 탓이에요.

앨범


이렇게 놔두어서는 안되겠다 싶어 남아있는 낱장의 앨범을 주워 모아 방으로 가져왔어요. 그리고는 한장한장 디지털 카메라로 찍어 웹 앨범에 저장하기로 했습니다.

앨범


앨범의 보호 필름을 벗기고 20년이 지난 사진을 만져보았어요. 사실 앨범이 온전했을 때도 1년에 한번이라도 들춰본 기억이 없습니다. 그냥 보관만 했었지요.


그래서 몰랐던, 그동안 느껴보지 못했던 지나가 버린 시간이 이렇게 애틋하게 다가오는 것인지 이번에 제대로 느껴볼 수 있었어요.


사진


앨범을 들추어보지 않았다면 까마득하게 잊고 살았을 사진 한 장입니다. 
1990년대 아시아 무전 여행을 하셨던 분인데, 태국과 일본을 거쳐 한국에 왔을 때, 라면 박스에 <태백>이라는 글자를 둘러메고 걸어서 가시던 분이었어요. 


무전 여행이다 보니 택시와 버스가 있어도 타지 않고 태워주는 차가 나타날 때까지 걸어가고 있었지요. 너무 늦은 시간이라서 집으로 모시고 와 하룻밤 묵게 해주었더니, 고향인 캘리포니아에 도착하자마자 편지와 함께 사진을 찍어 보내주셨습니다.

그땐 몰랐는데, 오늘 와서 보니까 사진 속에 사진을 찍는 모습이 그림자로 남아있다는 것을 발견했어요. 아무래도 아내 분이 아니었을까 20년이 넘은 지금에 와서 짐작해봅니다.


벚꽃


웹 앨범에는 위와 같이 찍어서 보관할 거예요. 처음에는 달력의 뒷면을 이용해 사진을 찍었지만, 망원렌즈를 최대한 활용해서 찍어봤더니 원본만 나오게 하는 것이 가능하더라고요. 물론 후래쉬도 터트리지 않고요.

오래되어 퇴색된 사진이라서 원본과 차이 없게 디지털 사진으로 복원 가능할까 걱정했던 부분을 말끔히 씻어준 첫 작업 사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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