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전날 고추 씨를 부었던 상자에서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이 모든 과정은 베트남 아내의 실력 덕이에요. 저는 모래나 퍼 오고 가게에서 상토나 사 오고, 샘에서 물이나 퍼 날랐던 것 밖에 없었지만, 그 작은 고추 씨를 골고루 뿌리고 그 위에 채로 거른 고운 모래를 살짝 덮어주는 건 아내의 실력이었지요.

고추모종


이렇게 예쁘게 고추 씨가 고운 모래 뚫고 올라왔어요. 그런데, 어느 하루는 도둑 생쥐 한 마리가 상처를 주었습니다. 오늘 하루 상처 입은 건 비록 작아도 그대로 놔두면 일 년 농사를 짓지 못할 만큼 큰 상처를 남깁니다. 

오전 햇살을 받을 수 있도록 담요를 벗겼습니다. 그런 일은 혼자서도 할 수 있지만, 어린 새싹이 하루가 다르게 올라오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다는 이유로 특별한 일이 없을 땐 함께 올라갑니다. 새로 올라오는 어린 새싹을 보러 즐겁게 오르내리다가 오늘은 "여보, 큰일 났어!" 아내가 가리키는 곳을 쳐다봐서 알았어요. 거기엔 생쥐 정도의 어린 녀석이 밤새 상처를 남긴 곳이었어요.


"이런!" 저도 아내 만큼 걱정스럽게 쳐다봤습니다. 예정에 없던 일로 고추 씨를 부었던 상자를 다시 모조리 들어내었어요. 하지만, 생쥐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제 어떡하지?" 아내의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었지만, 저라고 해서 갑자기 뾰족한 묘안이 생기지 않았어요.  잠자코 있었는데 아내가 이런 대안을 제시했어요.

"아, 맞다!"
"어머님한테 그거 있자나?"

"그게 뭔데?"

"손에 들고 다니시는 거.. 라디오!(노래가 천여 곡 이상 수록되어 있어 일명 효자 기기라 불리는)"

"그게 이 상황에 왜 필요한데?"

"저녁에 담요 덮기 전에 그 안에 넣어 놓으면 사람 소리 나서 안 올 거 아니야?"

답답할 땐 지푸라기라도 잡는다고 어지간히 그럴싸하게 들렸어요. 정말 효과가 있을까 미심쩍기도 했고 반짝 아이디어인 것 같기도 했어요. 그런데, 그런 생각을 송두리째 앗아간 그 이후의 아내의 말..

"아,, 그럼 생쥐가 기분이 좋아서 더 춤추고 놀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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