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땅이 얼었다 녹았다 반복하고 있어서 바깥 일이라곤 살랑살랑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 보니 집에는 수시로 들락날락해요. 그래서 조용한 농한기는 아이들과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낼 수 있어서 즐겁습니다.

오늘도 혼잣일 꾹 붙어서 하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왔어요. 아이들 목소리가 귓전에 맴도는 데다가, 깔깔거리는 웃음소리가 갑자기 듣고 싶어 지더라고요. 하지만, 무엇보다 아이들이랑 함께 있으면 시간이 무진장 빨리 지나갑니다. 지루할 새가 없지요. 행복이란 그런 건가 봐요. 눈 깜빡이는 동안에 훌쩍 지나가 버리는..

여섯살 딸

그런 딸, 그런 아들이 보고 싶어 일찍 집에 들어왔는데 이게 웬일인가요.. 
혼자서 방문을 닫아 놓고 베개 겉싸개를 씌우고 있었어요. 아빠가 방문을 열었을 땐, 세 번째 베개를 마무리 하고 마지막 베개를 위해 겉싸개를 집어 들고 있었습니다.


은수

아빠를 보자 잘해야겠단 생각이 앞섰는지 더욱 열심히 씌우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아빠 앞에서 잘 보이려고 했던 것이 하필 최고의 난이도를 자랑하고 있는 베개가 딱 걸렸습니다. 


은수

"어랏, 잘 들어가던 베개가 왜 이러지?" 


지금까지 수월하게 씌웠던 베개와는 달리 온몸을 이용해도 들어가지 않았어요. 조금은 당황한 것 같더군요.


겉싸개

"너 왜 이렇게 안 들어가냐?"

이를 악물고 재차 시도했지만 번번이 실패를 거듭하고 있었어요. 아빠 앞에서 멋진 모습 보여주려고 했는데, 마지막 베개는 뜻대로 되어주지 않았습니다. '아빠한테 실패하는 모습을 보일 수 없다?' 그럴수록 은수만 진이 빠지고 있었어요.

(에효,, 그만 해도 되는데..) 

"그만 해라!" 그 말 한마디가 목구멍까지 치밀고 올라왔지만, 아빠에게 잘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했던 은수의 눈빛을 읽었던 터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었지요.

가만히 지켜보기만 했던 아빠가 드디어 입을 열었습니다.

"베개가 너무 크니까, 아빠가 좀 도와줄까?

"그래, 여기 붙들어 봐!"

힘에 벅차긴 벅찼나 봅니다. 슬그머니,,슬그머니,, 베개를 꾸욱 눌러주었어요.
 

베개

모두 은수가 씌운 베개입니다. 수월하게 넣었던 베개와는 달리 마지막 베개는 솜이 무식하게 컸던 게 화근이었지요. 베개의 높이가 있어서 잘 사용하지 않는 녀석인데, 괜히 울 딸 힘만 빼놓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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