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천에 살고 있으면서 예천 읍내의 풍경을 사진에 담아보기도 참 오래간만입니다. 멀리 낯선 곳으로의 여행 중이었다면 메모리 카드가 과부하가 걸릴 정도로 무수하게 셔터를 눌러 댔겠지만, 매일 보는 풍경은 새로울 것도 구미를 당길 만한 끈덕지도 느끼지 못할 만큼 익숙해져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루는 아내와 함께 시장을 보러 나갔는데, 그날 따라 이상하게도 만사가 귀찮아지게 느껴졌어요. 시장 통로에 아내를 내려주고는,,

"시장 다 보면 전화해!"

그리고는 예천교 아래에 차를 주차하고 지루한 시간을 망상으로 때우고 있었습니다.

예천교

예천 읍내와 남본동을 잇는 예천교입니다.

이 다리는 예천의 많은 사람들에게 각별한 다리가 아닐까 생각해봤어요. 예전에는 편도 1차선 밖에 안되는 폭이 좁은 다리였지만, 현재는 편도 2차선(4차선)다리로 더 여유로워져 예천군민의 발걸음을 가볍게 만들어주고 있습니다.

안동이나 문경을 가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이 다리를 예나 지금이나 건너 다니곤 했지만, 무엇보다도 예천 중학교, 예천 여자 중학교, 예천 농업 고등학교 등 세 학교 학생들의 등하굣길에 없어서는 안되는 다리였지요. 


침 시간에 이 다리를 건널 때면 콘크리트 바닥보다 앞 학생의 운동화 바닥이 더 잘 보였던 기억이 납니다. 제가 중학교를 다니던 시절에는 학생 수가 지금과 비교해보면 훨씬 많았습니다. 그 대신 다리는 예전의 1차선 다리여서 한줄기 개미 떼가 지나가는 것으로 막 그려지고 있습니다.


그런 즐거운 회상도 잠시 문득 아찔했던 기억도 떠오르는군요. 역시 그 장소에 가면 그 장소에 얽힌 숨었던 기억들이 떠오르나 봅니다.

이번에는 다리 위가 아니라 다리 밑에서 있었던 기억인데, 중학교 때 친구들이랑 수영을 하려고 물에 들어갔던 적이 있었어요. 물은 다 같은 물인 줄 알고 겁 없이 헤엄치며 돌아다니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에 다리 한쪽이 마비되더군요.

흔히 표현하는 말로 <다리에 쥐가 났다>고 하지요. 물속에서 쥐가 나면 다리가 그렇게 무거워질 줄 몰랐어요. 백 킬로짜리 쇳덩어리를 다리에 얹어 놓은 느낌입니다. 그렇다고 아프다는 뜻은 아니고,,

배가 침몰하면 곧장 물에 잠기듯이 제 다리 한쪽이 쥐가 나자마자 다리부터 바로 가라앉기 시작했습니다. 본능적으로 숨을 쉬기 위해 턱을 하늘을 향해 치켜들었는데, 이미 입까지 물에 잠기기 시작했어요.

다행히 코가 물속에 잠기기 직전에 발가락이 먼저 수면 아래에 있는 바닥에 닿았답니다.

왜 발가락이냐구요?

숨 쉬는 기능을 하는 입과 코가 물속에 잠기지 않기 위해 본능적으로 발 뒷꿈치를 들고 있었거든요. 아무튼 수영을 하다가 쥐가 나면 꼬집어라, 소리를 질러라 이런 거 다 의미 없습니다. 계곡 같이 수온이 차가운 곳에서는 그저 허리 이상의 깊이에 들어가지 않는 것이 상책이지요.

이 예천교 아래의 수온도 당시에는 매우 차가웠었는데, 아무래도 거기에 원인이 있지 않았을까 30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다시 생각해봐도 변함이 없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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