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에는 벌써 겨울 김장용 배추와 무를 심어 바쁜 일상 속에서도 분주히 관리하느라 여념이 없습니다. 8월 말에 심은 배추와 9월 초에 심은 무가 파란 하늘을 보고 싶어 세상 밖으로 나왔지만, 올해는 유난히 벌레의 공격을 많이 받고 있어요.

그래서 오늘은 약 살포와 함께 특별히 크게 키울 필요가 없는 총각무(알타리)를 심을 겸 하루 일과를 끝낸 뒤, 둘 남매를 기다렸다가 텃밭으로 데리고 왔어요. 곧 땅거미가 지고 밤이 찾아 오는 시간이 되었지만, 벌레들의 공격이 심해져 더 이상 방치할 수도 없었습니다.  

딸

이 사진은 특별할 게 없다 싶어 편집 대상이었지만, 서두에서 말한 땅거미가 지는 시간을 가장 잘 드러내 준 것 같아 살려봤어요. 카메라는 조금만 조작해도 시간대를 알 수 없을 만큼 다르게 나오거든요. 
사진을 올리려고 요리조리 훑어봤더니 텃밭 도착 순간부터 은수는 불만 가득했던 것 같네요.

배추밭

김장용 배추 3백 포기와 일반무, 쌈용 배추를 심어 놓았어요. 저는 벌레약을 살포하고 아내는 무와 나물을 솎고 난 뒤 총각무(알타리무)를 심을 예정입니다.

가족

아내가 텃밭에 앉자마자 세 살배기 쭌이가 엄마 곁으로 가까이 가기 위해 무작정 텃밭 안으로 들어서려고 했어요. 하지만,고라니로부터 가을 채소를 지키기 위해 둘러 놓은 망을 쭌이 또한 통과할 수 없었답니다.

남매

그 옆에서 동생을 태연하게 지켜보던 은수는 아주 쉽게 텃밭으로 들어섰어요.

"은수야!~ 동생이랑 밖에서 놀고 있어!"

이미 다 커버린 듯한 은수를 나무랐어요. 만약 이곳에 동생이 들어온다면 채소가 무사할 것 같지 않았습니다.

남매

아빠한테 제제를 받은 은수가,,

"야, 너 때문에 나도 못 들어가잖아!"

동생한테 호통을 치더군요.


남매

단단히 화가 난 모양이에요.

눈물

이곳도 저곳도 받아주는 사람이 없었으니 얼마나 서러웠을까요? 모기에 물리고 눈물로 얼룩진 얼굴을 지켜볼 수 없어 허락했습니다.


"여기 들어와!"


가족

하지만 예상했던 대로 순조롭게 일을 할 수가 없었어요.

아들

예쁘게 솟아 오른 무싹을 하나하나 솎아 주는 아내, 그 뒤를 따라가며 호미로 유일하게 남긴 포기를 공격하는 아들..


남매

결국 텃밭에서 쫓겨난 남매..
그런데, 동생 쭌이가 좋은 길 놔두고 바위가 우뚝 솟은 가파른 길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세살배기

이럴 땐 넘어지기라도 할까 봐 지켜보는 아빠의 심정이 한없이 오그라듭니다.

남매

아빠가 "어,어" 하는 순간,곁에 있던 은수가 먼저 동생한테 다가갔습니다.

남매

하나보단 둘이어야 한다는 말이 이럴 땐 꼭 맞는 말인 것 같아요. 매일 서로 피곤하게 싸우긴 해도 어려운 일엔 돕는 모습이 참 예뻐보이더라고요.

배추

남매의 모습은 잠시 뒤로 하고 제가 여기 온 목적은 김장용 배추가 벌레의 공격을 처참하게 받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조금만 늦었어도 전멸 사태까지 갈 뻔했습니다. 

헛골에 풀약이며 배추에 벌레 방제까지..
거기에 아내의 눈치를 봐가며 아이들 사진까지 찍어야 하는 빠듯한 시간을 보냈어요.

잠시 뒤 방제를 후다닥 마치고 등짐분무기를 내려놓기가 무섭게 또 남매가 노는 모습을 지켜보았답니다.~ 

남매

핫!
정말 핫하지 않나요?


남매

키만 작다 뿐이지 얼굴도 더 크고 어깨도 더 넓은 녀석이 누나의 등에 업혀있었답니다.

ㅋㅋ

"누나, 나 약해!"

막 그러는 표정이에요.

은수


짜식!~

누나한테 아픈 상처를 남겨 놓고는,,
(눈가에 동생의 손톱 자국이 아직도 남아있어요.)

그래도 누나라고 누나 등에는 군말 없이 잘 업히더군요.

무 싹

어느덧 아내가 솎은 무 싹이 덤으로 통을 가득 메꾸고 있었습니다.

뒤늦은 시간에 텃밭에 와서 찜찜하게 여겨왔던 일들을 마무리했습니다. 그리고 그런 시간이 있어 집에서는 그닥 지켜볼 수 없었던 남매의 아름다운 일상을 지켜볼 수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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