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을 맞아 그 많은 제사 음식들을 혼자 감당했던 아내, 모두가 출발했던 곳으로 되돌아간 후에는 긴 여운이 남을 목소리로 혼잣말을 내뱉습니다. "아,, 베트남 가서 쌀국수 먹고 싶다!"
입장을 바꿔보면 그 말이 얼마나 간절한지 알 수 있겠더라고요. 제가 베트남에서 생활해야 하는 입장이었다면 설 음식, 특히 고사리와 도라지가 밥 위에 얹어진 제삿밥과 귀하게 보관해두었던 송이를 찢어 넣은 탕국.. 얼마나 생각났겠어요?
설 명절 기간이 끝나고 일상으로 돌아왔습니다. 아이들마저 각자 가야 할 곳으로 보내진 뒤에 라면 박스 크기의 종이 박스에 무언가 사 갖고 오는 아내, "그건 뭐야?" 물어봤더니 쌀국수 해 먹을 재료라고 했어요. 그리고는 집에 돌아와서 부엌에서 분주하게 움직이더니 덩그렇게 한 상을 차려왔습니다.
"당신은 못 먹을 거야!" 라고 말하는 아내,, 이유는 완전 베트남 식이라고 했어요. 그런데, 젓가락은 왜 두 개였을까요?
쌀국수 옆의 갖은 야채를 넣어 만들어 놓은 육수가 이번에는 베트남에서 해 먹던 방식과 똑같아 입맛이 안 맞을 거라 예상했었나 봐요.
"그래, 혼자 많이 드세요!" 저도 별 관심 없이 분주했던 집안이 갑자기 텅 비어진 듯한 분위기를 이겨보기 위해 텔레비전 볼륨을 잔뜩 올렸어요. 하지만, 후루룩 들이켜는 소리에 가끔 시선이 쏠리긴 하더군요.
아내가 저더러 이 쌀국수는 못 먹을 거야 했던 것은 바로 국자 안의 육수 때문인데요, 베트남에 처음 갔을 때 식당에서 마주쳤던 톡 쏘는 듯한 향내와 본토의 맛이 강했기 때문이었어요.
베트남에 가서 며칠 굶고 나서는 마지 못해 먹기 시작했던 쌀국수였습니다. 그런 베트남 향토 내음이 진하게 묻어 나오는 쌀국수를 이번에 다시 차려 나왔던 아내한테 "나도 한 그릇 먹어보자!" 자신 있게 대답하고는 한 그릇 싹 비워버렸지요.
더 이상 굶어서는 안되겠다는 신념으로 먹었던 베트남 쌀국수였지만, 한국으로 돌아올 땐 그 맛에 어지간히 적응해있었던 걸 아직 까지 아내는 모르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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