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풀려서 논으로 달려가 짚을 묶기 시작했습니다. 습기를 머금고 있던 짚단은 그 속이 젖어 있었기 때문에 얼음 뭉치가 되어 있었어요. 그런 녀석들은 묶지 못하고 마르도록 헤집어 놓아야 했습니다. 당연히 시간이 더 지체 될 수밖에 없었지요.

일 한 것은 없고 겨울 짧은 해는 더더욱 짧게 느껴졌습니다. 어느덧 시계 바늘이 오후 4시를 넘어섰고 산 그늘에 덮힌 논은 금세 추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조금만 더 짚을 묶고 가야지 마음을 토닥이며 추스르고 있을 때 제 바로 옆에 귀한 손님이 앉아 있었습니다.


논

마을에 있어도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 들리는 것 없고,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 말하고 싶어도 그런 세상 사는 이야기들이 생산되지 않는 너무나 조용한 시골이기에, 더 없이 놀고 싶어진 저였습니다. 행여나 날아 갈까 봐 조심조심 짚을 추스리며 손님을 맞이해 주었지요.


새

그래, 이런 들판에서 나랑 술래잡기 하는 네가 제일 반갑다!  안 그래도 지나가는 차라도 구경하고 싶었는데 신이 난 저는 잠시 일도 집도 잊고 서로 마주 보고 있었습니다.

나무

제가 가는 곳마다 어찌 따라 오는 것인지, 정말 나랑 놀고 싶어하진 않았을 텐데 끝끝내 절 따라 왔습니다.

논

사진을 찍으면서 지켜보니 제가 짚을 묶어 세우면 짚이 누워있던 자리에서 무언가를 연신 물고 나르기 시작하더군요.


새

짚이 아무리 따뜻하게 논바닥을 덮고 있어도 동지섣달에 무슨 먹이가 있었을까요?  



궁금해서 유심히 지켜보기로 했습니다.

짚

기나 긴 인내를 갖고 지켜봤는데, 저주 같은 85mm렌즈에는 담을 수가 없었습니다. 다행히 제 눈으론 봤으니 알려 드릴 순 있을 것 같습니다.

논바닥

그건 다름 아닌 아주 가느다란 짚 줄기였습니다. 제 머리카락보다도 훨씬 얇은 솜털 정도의 것.
왜 저를 따라 다녔는지도 알게 된 순간입니다.  
이제 저는 집으로 가야 할 시간인데 그 용도가 무엇일까 또 궁금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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