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살아가면서 늘 불러오던 호칭을 갑자기 바꾼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새삼 깨닫곤 합니다. 입에 배여서 편하게 불렀던 형이란 호칭도 철이 들고 나니 존칭어인 형님으로 바꾸고, 반말로 했던 대화를 존댓말로 바꾸어야 했지요.  

동창생이랑 소꼽친꾸 때부터 니,네 라는 호칭을 사용하다가 아이 낳고 가장으로서 살아가다 보니 주위의 시선이 곱지 않다는 것도 알았어요. 쓴소리가 가끔 들려 지금은 조심하고 있는 중입니다.ㅎ 그 정도로 호칭을 바꾸기가 쉽지 않아요. 또 엄마,아빠란 소린 어떻습니까?  어렸을 때 그렇게 부르면 용서가 됩니다만, 어느 순간 남들 앞에서 엄마,아빠란 호칭이 막힐 때가 있습니다. 그때부턴 한 단계 올려 불려야 할 시기란 것이지요. 하지만, 
새로운 중국 한자를 만난 것처럼 너무너무 어렵더군요. 

그렇게 간단하면서도 바꾸기는 또 그렇게 어려운 호칭 문제 ..
한번 바꿀 때마다 지독한 감기 몸살을 앓는 것이 낫겠단 생각도 들었던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 만큼은 아주 쉽게 확 바꿀 수 있었던 에피소드가 있어 소개해 봅니다.  


고추모종하우스

제 블로그는 일기 형식이라서 매일 들어오시는 분들은 대충이라도 분위기를 파악하고 계셔서 따로 설명을 안 드려도 잘 아시겠지만, 1주일 전 베트남에서 장인, 장모님께서 둘째 외손주와 조우하기 위해 한국을 찾으셨어요. 물론, 우리 둘째 때문에 집사람이 올해 농사를 지을 수 없어서 농사를 도와주는 목적도 있고요.

논

열대지방의 사람들이 한국 사람보다는 덜 부지런한 줄 알자나요?



베트남에도 몇 번 가본 적이 있지만, 땅이 일을 그렇게 시킬 수 밖에 없어서 그렇지, 더운 나라 사람이라고 해서 부지런하지 않는 것은 아니에요. 오히려 사계절이 있는 한국 땅에 오시면 저희 장인장모님이 아니어도 대부분 한국 사람들 못지 않게 일을 잘하십니다.

장모님

밭일이든 논일이든 베트남은 어떤지 몰라도 한국은 아침과 점심 사이에 참 시간이 따로 있어요. "장모님, 참 드시고 하세요!"
요지부동입니다. 
"응, 사위는 많이 잡수세요!~~"
딸이 좀 더 편안하기를, 사위가 좀 더 수월하게 농사를 짓게 하고픈 부모의 마음이란 걸로 이해를 해봤습니다.

장인어른

한국 들어오신지 며칠 되지 않았으니 푹 쉬시다가 제 일 도와주시면 되는데, 어떻게 해서든 딸을 설득해서 저를 밭으로 이끕니다. 한국 사람들이 흔히 하는 말로 "집에 있으면 좀이 쑤신다!" 아내가 이렇게 통역해 버리는데, 제가 어찌 집에 있을 수 있나요..ㄷ

언어도 통하지 않는 외국의 장인,장모님이세요. 하지만, 이런 생활을 겪으니 어찌 장모님,장인어른 부를 수 있을까요?

함께 밭일, 논일을 거치면서 자연스럽게 나오더랍니다. "아버님, 비닐은 한쪽으로 모아주세요!..."
고치기 정말 어렵다는 호칭을, 단번에 아주 쉽게 바꿀 수 있었던 하루였어요.

호칭 문제도 결국은 부딪혀야 답을 얻을 수 있나 봅니다. 힘들게 겨우 바꾸게 되었는데, 그 이후 만남의 시간을 자주 갖지 못하다면 도로아미타불이 되는 경험도 여러 번 해봤지요.~~

  1. 자칼타 2014.03.21 12:11 신고

    호칭을 바꾸기란 정말 쉽지 않은 것 같아요...

    어릴 때 ㅇㅇ삼촌이라고 삼촌들을 부를 때 앞에 이름+삼촌 이라고 불렀었는데요.
    어느날 한 삼촌이 막내, 작은, 큰 삼촌 으로 부르도록 강압적으로 개선시켜버렸죠..ㅎㅎ

    아버지, 어머니의 경우에도 엄마, 아빠 라고 부르다가 군대를 다녀고오 나서, 아버지, 어머니라 부르게 되었습니다. 제가 어떤 호칭을 쓰느냐에 따라서 상대방이 존중받을 수 있는 것 같아요~~

    • 도랑가재 2014.03.21 19:42 신고

      저도 그게 뼈저리게 느껴지는데,
      이 포스트에선 담지 못했네요.

      호칭을 높여서 나쁠 건 없는데,
      입에 밴 소리 바꾸기 어렵다고만 했는데,

      그걸 바꾸는 순간 제 인격이 무지 올라간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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