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김치냉장고가 처음 출시되었을 때만 해도 김치를 1년 동안 싱싱한 상태로 먹을 수 있을까 쉽게 믿기지 않은 적이 있었는데, 저희 집 김치냉장고로 약 9개월 정도까지 싱싱한 김치를 꺼내 먹게 되면서 새삼 인간의 기술력이 한계가 없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냉장고가 나오기 이전에는 집집마다 <단지>를 이용해 김치를 보관했지만, 해동이 되는 춘삼월이면 김장 김치의 수명이 다하더군요.

오늘 이야기 하고 싶은 건 단지나 김치냉장고나 사람의 손에 가공이 되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흙을 이용해서도 냉장고 이상의 효과를 볼 수 있다는 것을 보여드리기 위해서 입니다. 

흙

저희 집 뒤뜨락에 위치한 일명 땅속 무 저장고예요. 지난 10월 달에 뽑았던 무를 이곳에서 보관하고 있습니다.


무우저장고

구멍 마개로는 짚을 이용했어요. 산골에서는 구하기가 쉬울 뿐만 아니라 짚만큼 효과가 좋은 제품을 찾아보기도 어렵거든요.


조선무

짚마개를 걷으니 땅속 공간에 차곡차곡 쌓아 놓았던 무들이 모습을 드러내었어요.


무우

오늘로써 자그마치 백 일을 이곳에서 잠자고 있었던 녀석들이에요. 천정에서 떨어진 흙더미 말고는 아무런 하자가 없어 보였습니다.



빛이 없는 구덩이 속에서도 촉을 틔우고 제 2의 생명을 살아갈 준비들을 하고 있는 것이 보였어요.


무우촉

그 중에서 한 녀석을 꺼내봤습니다. 상태를 보니 캐올 때의 모습 그대로 깨끗한 상태일 뿐 아니라 칠흑같이 어두운 곳에서도 건강하게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무뿌리

하얀 실뿌리까지 내리며 언제라도 지상으로 출동할 준비들을 하고 있었어요. 


무싹

추운 겨울날을 얇은 흙 포장 만으로도 따뜻함이 느껴졌는지 이르게 자라고 있었습니다.

무우


때마침 마눌님께서 요리하고 남겨 놓은 무 반 조각이 남아있어서 속살을 공개해봅니다.
바람도 들지 않고 냉해도 받지 않은 아주 깨끗한 상태의 무지요?

요즘에는 대형 저장고가 보급되고 있어서 힘 들이지 않고도 보관이 용이해졌습니다만, 비싼 시설비와 유지 관리비가 들어가기 때문에 욕심을 버리고 조금의 수고로움으로 큰 효과를 볼 수 있는 이런 오래된 방법을 저는 아직도 고수하고 있습니다.

흙은 이렇게 아무런 댓가도 없이 무보수로 냉장고 이상의 관리를 해주고 있었어요. 사람과 마찬가지로 흙 또한 스스로 숨을 쉬며 살아가는 생명체이기에 늘 고마워하는 마음으로 살아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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