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2,30년 전만 하더라도 품앗이 하는 풍경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어요. 하지만, 세월이 흐르니 그분들 모두 연로해 지시고 젊은 사람들은 기계의 힘을 빌려 각기 다른 농사를 짓다 보니, 마을 공동체의 화려했던 품앗이는 사라져가고 있습니다. 아니, 사라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래도 완전히 꺼지지 않은 촛불처럼 저희 마을에도 유일하게 남은 품앗이가 있어요.

그건 바로 고추 이식하는 날이랍니다.



올핸 제가 1번으로 스타트를 끊었어요. 저희 마을의 고추 이식하는 시기가 설 연휴와 맞물려 있어서 날짜 잡기가 애매한 처지였습니다. 

아무튼 여기 모이신 할머니, 할아버지는 2,30년 전엔 1년 연중 품을 주고 품을 받으며 농사를 지으셨던 분들이에요. 이젠 세월의 억겁에 눌려, 앉아서 할 수 있는 고추 이식 정도만 서로 도울 수가 있답니다. 

품앗이

아기가 어른 품 하나를 잡아먹는다고 했어요.
정말 뼈저리게 실감하고 있습니다.

고추모종

세월의 떼가 비켜가지 못해 손등에 주름살이 눈 오듯 내려 앉았지만, 고추를 이식하는 속도는 젊은이들보다  훨~ 빠르답니다. 


또 할머니의 손은 약손이라고 하자나요. 어린 고추 모가 아주아주 잘살아 붙을 겁니다.


할머니

여기 할머니는 햇빛 가리개가 큰 모자를 쓰고 오셨어요. 이때가 아니면 언제 사진으로 남겨볼까 싶었는데, 많이 아쉬웠어요.

영식이할매

모두가 일흔을 넘어 여든을 바라보고 계시면서도 고추 이식하는 날에는 아픈 몸 마다 안 하시고 이렇게 찾아와 주셨습니다. 

병주할매

아직도 농촌에는 이런 할머니의 분주한 손이 곳곳에 필요한데, 무심한 세월은 잠시도 멈추지 않는군요.

능치할아버지

예전 같았으면 내년에도 품앗이를 함께할 무언의 믿음을 가졌겠지만, 지금은 기약을 하지 않습니다. 하루가 다르게 쇠약해지시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그저 고생하신 만큼 보람을 다 찾으실 때까지 건강하시기만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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