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설날이 가까워오면 저희 어머니께서 주로 만드셨던 음식 중에 대표적인 것이 감주(식혜)와 식해, 두부와 메밀묵이 있었는데, 식해는 어쩐 일인지 어릴 적에 이렇게 생긴 것이 식해구나 알 정도로만 보이고 말았던 음식이고, 감주는 아내가 바통을 이어받아 지금도 즐겨 만들어 먹는 먹거리가 되었어요.
두부도 매년 설날에 맞추어 먹긴 해도 그때 그 시절처럼 직접 만들어 먹지는 않습니다. 교통이 좋아 졌기에 주문해두었다가 찾아오기만 하면 되었거든요. 문제는 메밀묵인데, 어떤 설날에는 만들어지고 어떤 설날에는 종적을 감추는 바람에 설날에 먹는 음식으로 분간이 가지 않았어요. 그런 메밀묵이 올해 또 나타나서 저를 헷갈리게도 하고 반갑기도 했습니다.
어머니께서 설을 맞이해 어디에서 메밀을 구하셨는지 직접 만들어오셨어요. 설날에 메밀묵 잔치를 벌일 수 있게 된 것이 몇 년 만인지 모르겠습니다.
메밀묵이 집에 도착하자마자 시식부터 하고 보자는 우리 식구들..
장이 만들어졌다고 해서 바로 숟가락을 들 수 없었던 게 메밀묵 위에 잘게 썰은 김치도 앉아야 하고..
김도 얇게 썰어 얹어야 했기 때문이죠.
남편의 성화에 못 이겨 급히 날조된 양념장..
한 그릇을 비우고 또 한 그릇을 다시 비웠어요. 참으로 오랜만에 맛본 메밀묵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메밀묵이 왜, 어떤 해의 설날에는 출몰했다가 또 어떤 해엔 자취를 감추었는지 수수께끼란 생각이 들었답니다.
배를 두드리며 곰곰이 생각에 잠겨보니까 이 메밀묵이 만들어졌던 해의 설날에는 우연인지는 몰라도 어머니의 사위들, 즉 저의 매형 세분 중에 꼭 한 분은 다녀갔어요. 아마도 어머니께서 설날에 손수 장만하셨던 메밀묵의 깊은 의미는, 먼 곳에서 찾아올 사위를 위한 특별한 메뉴가 아니었을까 짚어보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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