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2학년 때였을까, 3학년 때였을까? 자세히 기억이 나지 않지만, 마을에 흑백 텔레비전이 한대씩 들어올 때마다 기와지붕 위에는 안테나가 한개씩 늘어났어요. 당시에는 전화기도 냉장고도 세탁기도 없던 시절이었습니다. 물론 산간벽지 저희 마을 기준으로요.

안테나


이장님 댁에만 있던 텔레비전을 보러 갔다가 눈물을 머금고 왔던 열살 남짓 어린 막내아들이 못내 안타까웠을까요, 그런 일이 있고 얼마 후에 저희 집에도 텔레비전이 들어와서 김일 선수의 멋진 레슬링 경기를 안방에서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문제는 걸핏하면 낡아서 부서질 것 같은 기와지붕을 밟고 안테나를 설치하는 거였어요. 이리 돌렸다가 저리 돌리며 안방에서 고함 지르는 소리에 맞추어 정신없이 돌려주어야 했으니까요. 제대로 맞추어 놓아도 바람이 불면 돌아가기 일쑤..

그 흑백 같은 시절에도 업그레이드는 존재했습니다. MBC와 KBS1 달랑 두 곳의 방송만 보다가 어느 날부터 KBS2가 합류를 했지요. 하지만, KBS2채널의 방송을 보기 위해선 UHF라는 안테나를 또 하나 걸어주어야 했어요.

또 지붕 위로 올라가서 고함 신호에 따라 이리 돌렸다가 저리 돌리다가... (왕 짜증이었어요.) 그렇다고 어떤 방송사가 몇 번 채널을 사용하는지 몰랐던 어린 나이에 제가 텔레비전을 감독 하겠노라고 할 수도 없었고...

안테나 때문에 허름한 기와지붕을 다람쥐처럼 오르내렸던 30년 전의 기억들이 되살아났습니다. 집 뒤에 있는 밭에서 이것저것 정리하다가 저희 집 옥상 위에 안테나가 안개로 인해 선명히 눈에 들어왔거든요. 비가 그친 직후에 생긴 안개 무리가 옛날에 세워져 있던 안테나를 더욱 돋보이게 해준 것 같아요.

물론 저희 집은 십여 년 전에 새로 지어졌지만, 위성안테나를 달기 직전이라서 고스란히 자리 잡고 있습니다. 비가 그친 봄날 오후, 다른 것은 안개에 가리고 가까이 있는 저희 집 옥상의 구닥다리 안테나가 선명하게 보였어요. 그런 날씨 덕분이었을까요? 잊고 지냈던 추억이 눈 앞의 안테나만큼 확연히 떠오르기 시작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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