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농사, 마라톤으로 치면 35킬로미터를 통과했다고 할까요. 모를 심고 우렁이 넣고 논이 말라 풀이 우후죽순처럼 올라와서, 비 오는 날 아내와 둘이 풀을 메던 적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막바지에 이르렀어요. 이제 남은 일거리라고는 논둑의 풀 관리와 논 말리기 작업(도구치기)만 잘하면 됩니다.

이 지방에서는 보통 5월 15일 경부터 말일 사이에 모를 심는데, 저희는 조금 늦은 30일 경에 심었드랬죠. 그래서인지 남들보다 조금 늦게 이삭이 올라왔어요. 보통 8월이 시작되면 이삭도 피기 시작하는데, 저희는 10일 경부터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때마침 많은 비가 연이어 내려서 늦게 심은 것을 다행으로 여겼는데, 어쩐 일인지 그 비가 저희 논의 이삭들이 고개를 숙이는 날까지도 멈추지 않았지요.

벼

저와 아내의 구슬땀이 맺혀있는 논입니다. 
이 논 위에 고추밭과 생강밭도 있어서 늘 지나다니곤 했지요. 길에서 보면 이삭들이 너무나 예쁘게 올라와 있었어요. 

논

이삭이 핀지 엊그제 같은데 벌써 고개도 숙이고 있었구요.

이삭

하지만, 약을 살포하러 논에 들어갔더니 쭉정이가 될 이삭이 많이 보였습니다. 
이삭이 올라오면서 함께 시작된 8월 장마가 자마구(벼꽃)를 힘들게 한 탓이지요.

쭉정이


벼

수정된 이삭이라도 영글게 키우기 위해 오늘 영양제 듬뿍 뿌려주었드랬죠.ㅠㅠ

올여름 너무 가물어 밭작물이 타들어 갈 때, 벼이삭거리는 많겠구나 싶었는데, 뜬금없이 나타난 8월 장마에 많은 사상자가 나왔지요. 비가 필요할 땐 그렇게 가물어 놓고 정작 비가 방해되는 벼 수정기간에는 아주 정확하게, 긴 시간 확인사살까지....
하늘의 뜻을 거스를 순 없지만 얄미운 건 얄밉네요.

이렇듯 농사란 것이 주인의 수고로움만으로 되지 않음을....
풍작이 될지 흉작이 될지는 주인의 손이 아니라 저 높은 하늘에 달려있다는 것을 깨달으며 1년 농사의 막바지를 향해 뛰어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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