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부의 딸이라서 할 수 있었던 말?

일요일 아침이었어요. 토요일 날 어린이집에 가지 않고 집에서만 지냈던 탓인지 일요일 아침에는 유난히 극성을 떨었습니다. 엄마아빠 둘 중에 누구라도 밖에 나가려고 하면 어디 가는지 캐묻고는 죽어도 따라 나서겠다고 고집을 부리지요. 마침 오늘은 집 뒤에 있는 고추모종 하우스에 담요를 벗기러 가는 거라 함께 가줄 수가 있었습니다.

엄마의 도움을 받아 모자부터 양말, 구두까지 벌써 신어버린 은수가 부엌으로 달려와 꾸물대고 있는 아빠를 소리 질러 나무랍니다.

은수

네 살 은수가 아직은 본 대로 따라하지만, 무시무시하게 잘도 따라하는 것을 보면 네 살 꼬마들이 이렇게 똑똑했었나 싶더군요.

은수

엄마의 손을 빌려 무사히 도착했어요. 
땅이 녹으면서 움푹 꺼진 곳도 있었고, 그런 곳을 지날 때면 넘어지곤 하는 은수지만 양말이 젖어도 울지 않았습니다.

은수

고추 모종에 물을 주고 은수만 덩그렇게 남겨 놓고 은수엄마 훌쩍 멀어졌습니다.

"은수야, 좀 이따 아빠랑 같이 가자!~~" 
그래도 엄마의 꽁무니를 쫓아 한 발 두 발 내디뎌 나가더군요. 아빠의 품보다 엄마의 품이 더 끌리는 탓이겠지요.

딸

이런,,,,

엄마가 없다?
엄마가 보이지 않으니 그때야 돌아섰습니다. 아빠에게로....

아이

네 살이 요로콤 똑똑합니다.



아빠가 하우스 문을 닫은 것을 따라하고 있어요.

네살

그리고 문을 닫고 뒤돌아서는 아빠의 근엄한(?) 표정까지...ㄷㄷ

은수

결국 아빠에게 다가오더니 손을 내밀었어요. 아빠는 행복해 하는 딸의 모습을 보너스로 담을 수 있었지요.


아이들...

한 살, 두 살, 세 살, 네 살짜리 아이들이 무엇을 알까요? 본 대로 흉내 내고 들은 대로 따라 할 뿐이지요.
저는 그렇게만 생각하고 살아왔습니다. 하지만, 직접 자식을 낳아 키워보니 흉내를 내도 너무 잘 내고, 따라 해도 너무 잘 따라하는 것이 아이들이라고 하기에는 그 학습 능력이 상상을 초월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요.

그런 생각이 스쳐 지나가니 작년, 그러니까 은수가 세 살 때였지요. 하루는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저녁을 먹은 후 은수한테 아빠 등 좀 밟아 달라고 했더니,,

은수: 
안 돼!
아빠: 왜?
은수: 고추 밭에 일해, 다리 아파!~
아빠: ㄷㄷ

얼마 후에 또 은수가 아빠 등을 밟아 주길 기대하며...
아빠: 은수야, 아빠 등 좀 밟아 주세요.^^
은수: 안돼!~~
아빠: 왜?
은수: 생강 밭에 일 해!~~~
아빠: ㄷㄷ

응용력도 영리하지요?ㅎ

세 살 때부터 은수가 내놓았던 핑계들이에요. 
재미있는 건 
은수의 변명이나 핑계, 또는 하기 싫은 것들이 농삿일 핑계입니다. 그런 건 농부의 딸로 태어났기 때문에 가능했던 말들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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