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해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으로 제목을 정하고 이글을 작성해 봅니다. 

올해로 제가 결혼 한지 5년차에 접어들었어요. 그 기간이면 서로의 장단점을 모두 파악할 수 있는 시간으론 충분했다고 봅니다. 그리고 나서는 실망할 새도 없이 자식을 키우느라 발버둥 치는 시기인데, 이젠 마눌님 눈동자만 마주쳐도 무슨 이야기를 꺼낼 것인지 무슨 이야기를 하려다가 말았는지 말 안 해도 알게 되더라는...

그렇게 살고 있는 저희 집 지붕 아래 오늘 갑자기 아내의 이상한 주문이 시작되었습니다.

"여보, 미장원 가야 하는데 둘째 때문에 시간이 나지 않으니 당신이 좀 깎아주면 안 될까?"

헐...

제가 이 지구 상에 모습을 보인 이후 금강산이 네 번 바뀌는 동안 이 별일 저 별일로 다 살아봤지만, 제 머리도 한 번 깎아본 적 없는 저더러 머리카락을 잘라 달라니요..

"이야, 마누라가 제정신이야?"

"워메, 마누라가 평생 바가지만 긁을 줄 알았는데, 알게 모르게 남편을 신임하고 있었던 거야?"

잠깐 동안의 잡생각이었지만 참 행복했던 순간이었습니다.

지금부턴 말 보다 사진으로 아내의 머리카락을 맘껏 주무르고, 싹뚝싹뚝 잘랐던 행복한 순간을 사진으로 보여드리면서 행복했던 순간을 터치해 보겠습니다.

머리카락

애초에 "난 자신 없어!" 그랬어야 했는데, 마눌님께서 예고도 없이 묻는 바람에 저도 아무 생각 없이 내 뱉은 말, "내가 머리 잘 깎는 건 어떻게 알았어?" 했던 것이 부담 백 배가 되었어요. 아내가 뒤돌아서서 머리를 맡겼을 땐 큰소리 쳤던 제 말과는 달리 손이 떨려서 빗이고 가위고 덜덜 떨려서 마누라가 눈치챌까 오금이 저리기까지 했다는..ㅠ

아내

어쨌거나 마눌님의 머리카락은 제 손바닥에 맡겨 졌고 전 가위를 들어야 하는 상황에 닥쳤어요. 막상 제가 직접 머리를 가위로 잘라보니 뜻대로 안 되고 있었지요.ㅠㅠ 

좌우 대칭만 맞지 않은 게 아니라...


부부

바깥 머리 안 머리가 조화를 이루지 못해 정말 난감했다는...ㄷ


머리

"아직 멀었어?"
아내의 질문에 겁이 나서,,

"으응!~~"
"이제 다 되었어!, 잠만,,,정리 좀 해 줄께..ㄷㄷ"


아내

머리카락은 가위로 잘라도 통증이 없겠지?
어차피 아내는 제가 다 되었다고 할 동안 뒷모습을 볼 수 없으니 주구장창 자르게 되더라는...ㅠ


머리카락

어쨌건 하룻밤을 넘길 순 없는 상황이라 겨우 마무리해 놓고...



"응,,,이제 다 되었네.."
"봐라, 내가 깎으니 넘 예쁘게 깎자나.."ㄷㄷ


마눌님 거울 보고 나오더니 맘에 들었는지 이번엔 "앞머리도 눈을 찌르니 눈썹까지 잘라!" 그러더군요.ㅠ

헐,,,
(일단 뒷 머리가 맘에 들었다니 부담은 50프로 사라졌어요)


머리카락

또 눈썹까지 자르긴 잘랐는데,,,
가위 끝이 마눌님 눈을 찡그려서 생겨난 주름보다 수백 배 더 크게 떨렸었다는...

그래도 눈감고 있네요.

떨리는 가위 끝이 마눌님이 눈치 못 채기를 바라며 또 살 떨리는 모험을 해야만 했어요.

머리카락

오늘 제가 저 보자기로 아내의 목을 휘감고 저 가위로 아내의 머리카락을 잘랐는데, 가위질 한 번도 안 해본 제가 무작정 덤벼들었다가 낭패를 볼 뻔한 사건이었지만, 그래도 남편이랍시고 믿어 준 아내가 너무 고맙고 그래서 남편인 저도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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