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심한 밤, 잠을 청하기에 앞서 딸아이한테 손발을 씻고 나오라는 엄명이 아내로부터 떨어졌습니다. 은수가 예쁜 딸이라서 아빠가 칭찬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한없이 여려서 평소 고분고분 명을 잘 받듭니다.

엄마아빠가 텔레비전에 정신을 빼앗기고 있었을 때, 몰래 씻으러 들어갔던 은수가 곧 문을 열고 나와서는 "엄마, 발 다 씻었어!~" 그러는 거예요. 그런데, 한 손엔 물티슈가 들려있었습니다. 저는 아무렇지 않게 봤는데, 은수엄마는 무슨 냄새를 맡았는지 은수한테 "너 발 안 씻고 물티슈로 닦았지?" 라고 묻더군요.

설마...

은수는 "아니야, 진짜 씻었어!~" 라고 대답은 해 놓고 실쭉샐쭉 웃고 있었어요. 다분히 장난끼가 솔솔 풍겨 나오더군요.

아,,

저도 그때야 어떤 상황인지 그림이 그려지더랍니다.

설겆이

다음날 아침이었어요. 아침밥을 먹고 난 후의 설거지부터 화장실 청소까지..
여태 보지 못했던 광범위한 스케일의 대청소를 혼자 즐기고 있었어요.


대청소

화장실 청소도 모자라 엄마아빠도 잘 닦지 않는 구석구석까지 물을 붓고 휴지로 닦아내고 있었어요. 그때 어젯밤의 폭소를 자아내게 했던 일이 생각나서 은수한테 슬쩍 물어봤습니다.



"은수야, 어젯밤에 물티슈로 발 어떻게 닦았어?"

그랬더니, 손수 물티슈를 가지고 와서는 재연을 해주는 백지 같은 은수예요.

물티슈

물티슈를 바닥에 내려놓고 앉을뱅이 의자를 끌고 와서 앉더니 한쪽 다리를 무릎에 탁 걸치더군요.


은수

"이렇게 닦았어!~"

아빠가 목욕할 때면 뒤따라와서 같이 씻으면 안되냐고..
거절이라도 하면 엄마한테 쫓아가서는 같이 못 씻게 한다고 일러바칠 정도로 목욕을 좋아했던 은수인데, 왜 발을 씻으라고 했을 땐 꾀를 부렸는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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