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이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아버지의 빈자리..
올해로 11년째를 맞이하지만, 그 공백은 다른 어떤 것으로도 메꾸어지지 않습니다. 


아버지께서 돌아가시기 몇 해 전부터 유별나게 잔소리가 심해지셨는데,, 

"장가는 언제 갈 거냐?"

"장가 안 가냐?"


추석 명절이든 설 명절이든 고향 땅 밟으면 첫 인사가 그랬답니다. 그리고 얼마 뒤인 2004년 8월 그렇게 세상과 이별을 하고 말았지요. 참 서럽더군요.
아버지의 소원을 들어주지 못해 더욱 서러웠답니다. 


다시 5년이 더 흘러 여차 저차해서 장가를 가게 되었고 살아 계셨으면 무릎에 앉히고픈 손주들도 만들었는데 이미 때가 늦어버렸지요.

손녀

그래서 추석이든 설이든 명절엔 꼭 아내와 함께 찾아뵙곤 했습니다. 살아 생전 풀어드리지 못한 소원을 이렇게라도 풀어드리고 싶었어요.

손주

은수는 벌써 3년째 할아버지의 산소를 찾았습니다. 그래서인지 이번에는 누워 계신 할아버지의 배 위에 올라타서 막 뛰어놀더군요. 예전에 큰 손주가 아버지의 등 위에 올라타고 노니까, "아고, 나 죽는다!" 즐거운 비명도 지르고 그러셨는데, 아마 이번 설날에도 그러지 않으셨을까 싶습니다.


은수

"은수야, 할아버지께 세배 올려야지?"


할아버지의 배를 콩콩 밟고 있던 은수를 불렀어요.


세배

모두 따로따로 지내게 했습니다. 저와 은수가 먼저 지내고 두 번째는 아내와 은수가, 세 번째는 막내동생이 세배를 드렸습니다. 그러고 보니 아빠의 착오로 은수는 한번 더 할아버지께 세배 드리게 되었네요.


손녀

이날 할아버지께 드리는 모든 술잔은 은수가 책임을 졌습니다. 막내아들 장가 못 가서 그토록 애를 태우셨는데, 막내아들의 예쁜 자식 실컷 보시라고 말이지요.

사실 이번 설날부터 손자까지 대동하려고 했는데, 안보이던 콧물이 흐르기 시작해서 손자는
추석으로 미루어야 했답니다.

뒤늦게 장가 든 못난 막내아들의 응어리진 가슴이 아버지의 산소에 올 때마다 조금씩 조금씩 사르르 녹아내리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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