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저 같은 경우는 농사를 지으면 지을수록 돈이 모이는 게 아니라 빚이 벌리고 있습니다. 이제는 농사가 풍년이어도 곤두박질, 흉년이 되어도 곤두박질 치는 시대에 접어 들은 듯해요.

그런 고달픈 농촌에 시집을 와서 남편만 바라보고 살고 있는 아내가 스스로 용돈 만들기를 저 모르게 이른 봄부터 작정했었나 봅니다.

토란

"여보, OO상회(저희가 단골로 이용하는 상회)에서 토란 열 다섯단만 베어 오래!"

엊그제 시장을 보다가 저 몰래 주인 아주머니와 속닥 합의를 보고 와서는 저한테 그렇게 이야기 하더군요.

"언제? 한 단에 얼마 준대?"


토란

때갈이 논밭에 토란과 들깨를 심어 남들로부터 따가운 눈총을 피할 수 있게 된 것 만으로도 만족하며 지내고 있었는데 아내의 수단이 보통이 아니었어요.

가족

삼일을 꼬박 고추를 수확하고 녹초가 되어 한 시간 일찍 집에 가자고 했더니, 그 시간을 이렇게 활용하자고 한 아내..



다음 장날(내일)에 갖다 주기로 약속했었나 봐요. 어둡도록 고추를 수확했다면 그 다음 장날을 기약했겠지만, 쉬자고 했던 시간을 이렇게 써먹고 있습니다.


가족

"곧 해지려고 하는데?"

"아이들은 어떡하고?"


몸이 너무 고단한 나머지 끝끝내 저항을 해봤어요. 사람이 많아서 해 떨어지기 전에 끝낼 수 있다는 말에 말문이 닫혀 결국 현장으로 출동해야만 했다는..

아내


그동안 아내한테 용돈 한번 제대로 쥐어준 기억이 없는 못난 남편인데, 그런 남편한테 볼멘 소리 대신 스스로 용돈 만드는 기술을 터득해 나가고 있었습니다.

지난 따스했던 어느 봄날에 토란이며 흰 들깨, 검정 들깨를 모든 묵밭(다섯 마지기)에 심겠노라 말했던 아내의 본심을, 수확철을 맞아 그토록 토란과 들깨에 정성을 기울였는지 뒤늦게 깨닫습니다.

토란


올해는 아내의 용돈 만들기 프로젝트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져 껍질을 벗길 일도 근심도 사라졌습니다. 앞으로 아내의 용돈 벌이에 기뻐하는 모습만 지켜보면 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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