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 만에 일 좀 해보려고 했더니 하늘이 도와주지 않네요. 비가 내려서 야외로 나가진 못하고 집에서 닥을 삶아 아내와 껍질을 벗기기로 했어요. 굵은 빗방울 같았으면 아예 엄두도 내지 못했겠지만, 안개가 내려앉듯 살포시 내리는 가랑비였어요. 이슬비라고 해도 무방할 것 같아요.

문제는 그걸 겨울에 맞아야 한다는 것이었지요. 가랑비에 옷 젖는다고 촉촉해진 옷을 겨울에 입었다고 생각해 보세요. 일을 끝내고 나서 코 맹맹 머리 지끈!~ 살짝 몸살 끼가 돌았다는...

또 어쩌다가 투덜거리는 이야기가 되어버렸지? 오늘처럼 즐거운 성탄절엔 그저 행복하고 즐거운 이야기를 해야 하는데 말이죠. 크리스마스를 맞아 또는 얼마 남지 않은 날들이 다 가버리기 전에 뒤도 한번쯤 되돌아봐야 하지 않겠어요?

베트남아내


오늘은 베트남에서 저를 만나 한국으로 시집을 온 제 집사람에 관해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보자고 해요. 애초에 꿈을 안고 한국 땅을 밟았겠지만, 지금은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부지런히 움직이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을 알아버렸어요. 비단 제 와이프 뿐 아니라 많은 결혼 이주 여성 분들이 그런 현상을 겪는다고 해요. 그만큼 한국에 대한 좋은 이미지만 막연하게 떠올리고 오기 때문이에요.

베트남아내


그래도 생활력이 강해 꿈과 동떨어진 현실에 처해졌다고 해도 보다 나은 삶을 위해 억척 같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입니다. 결혼 초기에는 없는 살림에 친정으로 돈을 보내라는 요구까지 있어서 조금 힘들긴 했지만.. 이건 어느 다문화 가정이나 결혼 초기에 겪지 않는 현상일까 추측해봅니다.



제가 국제 결혼을 하기 위해 빚을 낸 것처럼, 제 아내 역시 한국으로 시집을 가기 위해서 빚을 낸 돈이었어요. 조금 지나 아이 낳고 한국의 경제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시댁 가정의 경제 수준이 어떠한지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면 잠잠해집니다. 결국 남편과 아이들을 위해 자연스레 돌아선다는 것이지요. 모계사상이 강한 베트남 사회에서 이 정도의 변화는 결코 쉬운 것이 아닙니다. 베트남에선 여자가 결혼을 해도 친정의 삶의 수준을 신경 쓰며 늘 도우려고 하기 때문이죠. 

베트남아내


이제 순수 우리 둘만의, 아니 우리 가족의 보다 나은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 이렇게 노력하는 길밖에 없단 것을 누구보다 잘 알게 되었어요. 그래서 비가 내리는 겨울날에도 일을 나서서 하려고 합니다. 가끔 베트남에 있는 처남 내외를 위해 작은 선물이라도 보내자고 하면 비행기 화물비가 비싸다며 만류합니다. 행여 주위에서 누가 베트남으로 출국한다는 연락이 닿으면, 그때야 세면 도구와 타올 또는 수건 등 이것저것 준비해서 보내주지요.

꿈을 이루어 놓은 곳으로 왔으면 좋았겠지만, 한국 땅을 밟는 순간 밑바닥에서 시작해야 한다는 현실 앞에서도 불만 불평 없이 팔을 걷어붙이고 일을 즐깁니다. 거기엔 남편이 있고 아이가 있고 희망을 걸기 때문이 아닐까요?

행복이란 것이 넘치는 삶에서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부족함을 메꾸어 나가는 과정 속에서 찾아 온다는 것을 알아가고 있습니다. 그것이 종교를 믿든 믿지 않든 크리스마스 성탄절을 맞아 예수가 실천하고자 했던 진정한 행복이 아닐까 생각해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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