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제 앞에 앉아서 업무를 보고 있던 은행 직원이 "운전면허증 갱신 기간이 지났네요?"라고 신분증으로 제출했던 운전면허증을 돌려주며 이야기했습니다. 깜짝 놀라 갱신 날짜를 보니까 정말이지 이미 한 달이 초과되어 있었어요.

부랴부랴 가까이 위치해 있는 읍내 경찰서로 달려갔습니다. 벌금이 얼마나 나올지 가슴이 콩닥콩닥..

"운전면허증 갱신 기간이 새롭게 바뀌었기 때문에 아직 두 달 여유가 있어요."


놀란 가슴 쓸어 내리며 경찰서를 가볍게 나설 수 있었습니다.

보문파출소

면 단위로 하나씩 있는 파출소입니다. 인구 수가 워낙 저조한 데다가 대부분 사람들이 얽혀있는 관계로 지내기 때문에 1년 365일 조용한 분위기입니다. 

열흘 후 갱신한 운전면허증을 찾아가라고 연락이 와서 지나는 길에 들렀더니 출타 중이었어요. 다행히 문밖에 콜 전화기가 있어 바로 연락을 취할 수 있었습니다. 마을회관에 잠깐 볼일 보러 나왔는데 5분 안에 도착하겠노라고 했어요.


보문파출소

그 5분도 기다리는 시간이 지루해서 파출소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어요. 


그랬더니 건물 오른쪽에 두 개의 비석이 세워져 있었는데 무슨 내용이 담겨져 있을까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더군요.

비석

경찰아저씨를 기다리는 동안 어떤 내용인지 차분히 읽어보았답니다.

6.25



<1950년 6월 25일 북괴의 남침으로 7월 12일 북괴군 제8사단 병력이 예천까지 내려와 군,경 및 미 제25사단 선발부대와 접전시,보문지서는 본서 병력으로 북괴 침공을 대비하고 있던 중,동년 7월 31일 예천읍에 적의 대병력 침공으로 경찰부대는 국군의 후퇴명령으로 동일 밤 12시를 기해 예천읍을 철수하게 되었으나, 보문지서 만은 전화 두절로 후퇴를 못하고 있던 중, 적의 기습으로 경찰관 3명전사, 지서장 외 5명 행방불명 등 참사를 당한 바 있어, 이곳 전적지에 유적기념비를 건립하여 영령의 충혼을 기리고 있음.>

전쟁 중에 전화 두절로 인한 참사..
무슨 뚱딴지 같은 소설을 읽는 기분이었어요.

그러다가 아참,,,
전쟁통이지!

그리고 다이얼 전화기가 나오기 전의 시절입니다. 제가 초등학교를 다닐 때만 해도 학교 교무실에는 낚시 릴 돌리듯 전화기를 돌리면,교환이 받아서 연결 시켜 주었는데 그보다도 약 30년 전입니다.

그런데도 삐삐나 무선 전화기로 후딱 연락하면 될 것을..
그런 말도 안되는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65년 전의 끔찍했던 혈육 간의 뼈아픈 전쟁이 어찌 나에겐 까마득한 옛 역사로만 느껴졌을까,그런 제 자신을 돌아보고는 깜짝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어요.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 이곳의 슬픈 역사를 읽고 있는 것 보다 더 놀라게 되었답니다.

전쟁이 끝난 시점에 태어나 전쟁이 재발 하지 않는 시간을 살고 있는 저와 비슷한 세대는 행운을 타고 났다고 밖에 볼 수 없겠지요. 고통과 공포, 절규와 절망감 밖에 없는 전쟁이 이 땅에 다시는 일어나지 않아야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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